영화 속의 노년(105) : <오리우메>

오마이뉴스 2008.03.09 10:53

마사코 할머니. 나이는 일흔 살.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사라져 할아버지 손에 자란다. 양부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매맞는 것이 괴로워 일찍 결혼을 하지만 남편 역시 어린 사남매를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바느질로 어린 사남매를 길러낸 할머니.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씩씩하게 혼자 살아간다. 그러던 중 세 아들 중 가장 같이 살고 싶었던 막내 아들 부부의 청을 받아들여 아들네와 합친다.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외로움도 걱정이었지만 간단한 집안일에 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도 솔직히 있었다.

그러나 웬 걸. 어머니가 이상하다. 쓰레기 봉투 하나 제 자리에 내다 버리지 못하고, 음식 욕심에 걸핏하면 화를 내고, 엉뚱한 트집을 부리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미루고 미루다가 찾은 병원에서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내린다.

책 <치매, 희망을 이야기합시다>(한국치매협회 지음)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은 뇌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치매 원인 중 약 60-7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발생하고 서서히 악화되기 때문에 가족들은 그저 나이가 드셔서 그렇겠거니 하고 병원을 일찍 찾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는 이 질환을 최초로 보고한 의사의 이름이다.

피해 망상, 의심, 거짓 이야기 지어내기, 폭력, 요실금 등 마츠코 할머니는 계속해서 나빠져간다. 견디다 못한 가족들은 시설을 알아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며느리는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시어머니의 지나온 생과 추억과 아픔과 숨겨진 재능을 하나씩 알게 된다.

시설 입소만이 능사가 아니라 환자인 어머니 스스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에다가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힘을 보탠다면 얼마든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머니는 물론 가족이 변하고 이웃이 변한다.

▲ 포스터 영화 <오리우메>

ⓒ 마츠이 히사코 오리우메

영화 제목인 <오리우메>는 우리 말로 하면 '꺾어진 매화'라는 뜻. 매화는 꺾어 심어도 양분을 흡수해 꽃을 피우기 때문에 '오리우메'라 불려진다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치매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가면서도 다시 생명의 꽃을 피우는 할머니, 할머니가 곧 꽃이다.

지난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는 영화 <오리우메>의 특별 상영회가 있었다. 영화 상영과 함께 첫날에는 이 영화를 만든 마츠이 히사코 감독과 우리나라의 변영주 감독의 대담회가, 둘째 날에는 '한일 양국의 고령자 복지-영화 <오리우메>를 둘러싼 대화'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50세에 감독으로 데뷔해 <오리우메>가 두 번째 작품이라는 마츠이 감독은 관객들의 열띤 반응에 놀라움을 표하며 "우리가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가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고자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한 제작비를 모아 영화를 만들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더불어 사는 마음을 담으려 했고, 바로 나와 우리 주변의 일이기에 최대한 작위성을 배제했다. 다만 관객들의 관심을 위해 주연 배우는 최고의 배우를 기용했다."고 덧붙였다.

변영주 감독은 "이 영화의 미덕은 치매 노인을 집에서 모시는 것과 시설에 모시는 것을 이분법으로 나눠 냉정하게 다루지 않고, 다양한 선택을 존중해 다른 선택이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점"이라며, "일본에서 이 영화를 6, 7년 동안 200만 명이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공간에서 영화를 지속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둘째 날 심포지엄에 참여한 한일 두 나라 노인복지 전문가 8명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치매는 감추어야 할 병이 아니기에 밖으로 드러내어 도움을 요청하고 사회 전체가 함께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또한 치매는 뇌에 생긴 '병'이므로 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의식 계몽과 변화를 통해 조기에 발견해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강조했다.

이 영화를 어르신들과 치매 가족들은 물론 일반 시민 교육용으로 다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는데, 이에 대해 마츠이 감독은 "이번 행사의 주최자인 일본국제교류기금에 요청해 영화 상영 관련 창구를 만들도록 하겠으며,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하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치매 어르신의 어이 없는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고, 고통을 겪는 며느리를 보면서 혀를 찼다. 그리고 눈물도 닦았다.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게 아닌 병' '뇌혈관과 뇌세포를 가지고 있는 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인 치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늘어나는 치매 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함께 치료하며 더불어 살아나갈 지 더 이상 고민을 늦출 수 없다.

영화 상영 일정이 빨리 확정돼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고, 마츠이 감독은 돈이 되지 않을 영화지만 꼭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해 돈을 모금해 제작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나도 기꺼이 돈을 내리라 결심했다.

덧붙이는 글 | <오리우메 / 일본, 2002>(감독 마츠이 히사코 / 출연 : 하라다 미애코, 요시유키 카즈코, 토미즈 마사)